이틀 연속 술을 마셨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술 마시는 핑계야 백 가지도 넘는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한잔, 일이 고되어도 한잔, 비가 와도 한잔이다.
나는 술에 대해 나름의 기준이 있다. 술을 마시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술 때문에 다음 날 생활에 지장이 생긴다면 이미 선을 넘은 술이다. 운전에 문제가 생기고, 일에 차질이 생기고, 몸이 힘들어진다면 자제해야 한다. 차마 끊어야 한다고까지는 말 못하겠다. 내 인생 얼마나 남았다고 좋아하는 술까지 완전히 끊겠는가. 다만 감당 가능한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 술자리에는 넷이 모였다.
박승원 광명시장의 취임 축하를 빙자한 모임이었다. 축하도 축하지만, 결국 사람은 술잔보다 대화 속에서 더 깊이 연결된다. 뜬금없이 70년대 왕우(王羽)가 출연하던 홍콩 영화 사대천왕(四大天王)이 떠올랐다.
1차는 고깃집, 2차는 맥주집. 자리를 옮길수록 대화는 점점 깊어졌다. 자연스럽게 현 시국 이야기로 흘렀고, 다행히 큰 논쟁은 없었다. 생각의 결이 대체로 비슷했기 때문이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평소 독서의 힘으로 철학적 내공이 상당한 김단장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이 대화는 거의 김단장과 나, 둘만의 낮은 목소리 속에서 오갔다.
고 신영복 선생님의 저서인 담론(談論)에 나오는 득위(得位)와 실위(失位) 이야기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관련 내용을 다시 찾아보며 의미를 정리해 보았다.
득위(得位)는 자기 자리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리는 단순한 직위나 직책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과 조화를 이루는 자리,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위치를 뜻한다. 예컨대 자신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힘이 필요한 자리에 있는 것이 득위(得位)는 얼핏 보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30의 여유가 중요하다. 여유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주변을 돌아보게 하고, 사람과 소통하게 하며, 더 멀리 보게 한다.
반대로 실위(失位)는 자기 자리를 잃는 것이다.
능력은 70인데 100의 힘이 필요한 자리에 앉는 경우다. 부족한 30을 메우기 위해 무리하게 된다. 여유가 없으니 조급해지고, 조급함은 권위주의를 낳는다. 결국 자리를 지키기 위해 힘에 의존하거나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생각해 보니 득위와 실위의 본질은 결국 하나다.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돌아보면 이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붙들고 있던 삶의 기준이기도 하다. 일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고, 술도 마찬가지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욕심내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억지로 쥐려 하지 않는 것. 사람은 늘 자신의 것보다 더 큰 자리, 더 많은 돈, 더 높은 명예를 원한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것을 손에 쥐는 순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짐이 된다.
여기서 문득 대학(大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知止而後有定(지지이후유정). 멈출 곳을 안 뒤에야 비로소 뜻이 정해진다. 참으로 깊은 말이다.
사람이 흔들리는 이유는 대개 멈출 줄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는 고민하면서도,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욕망, 더 큰 권력을 좇다가 결국 자신을 잃는다.
득위(得位)란 어쩌면 멈출 자리를 아는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내 자리인지를 아는 것. 그 경계를 아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감당할 능력도 철학도 없는 사람이 무거운 자리에 앉으면 본인도 불행하고 주변도 힘들어진다.
반대로 감당할 힘이 있는 사람은 자리에 눌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를 바르게 만든다.
살아갈수록 더 분명해진다.
인생은 끝없이 나아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어디서 멈출지를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기 자리를 얻는다.
知止而後有定(지지이후유정).
멈출 줄 아는 사람에게 비로소 득위(得位)의 삶이 시작된다.







